이치로의 야구관과 빌리 빈.

 

빌리 빈은, 출루가 이루어진 다음 장타로 그 주자를 홈으로 생환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득점방식이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로, 전통적인 야구관에서도 이러한 사고방식은 잘 투영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인 타순구성의 개념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준족의 교타자가 1,2번에 포진하고 장타력을 가진 타자가 중심타선에 위치하는 전통적인 타순구성이야말로 빌리 빈이 말했던 효율적인 득점방식을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빌리 빈은 전통적인 야구관과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좀 지나치지 않을까?

루상에 주자를 내보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은 전통적인 야구관이나 빌리 빈의 이론이나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다만, 빌리 빈은 사고를 좀더 확장하여 아웃을 당하지 않는 능력을 중요하게 평가하고 타율대신 출루율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던 것이다.


타율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사사구의 경우는 단순히 투수의 실수정도로 치부하던 전통적인 야구관에서 탈피하여 출루율의 가치를 격상시킨 그의 혜안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그의 출루율 지상주의에도 작은 맹점이 있다.

그가 출루율을 극도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웃카운트를 잘 당하지 않는 것이 야구에서의 득점에서 매우 중요하였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더블플레이를 잘 당하지 않는 타격에 대해서도 높은 의미를 부여했어야 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루상의 주자까지 아웃시킴으로서 순식간에 두개의 아웃카운트를 허비하는 더블플레이는 출루율에선 전혀 반영이 되지 않는다.

아웃을 잘 당하지 않는 야구를 표방했던 빌리 빈이 더블플레이에 의한 아웃카운트의 소비가 고려되지 않는 출루율 자체를 신봉했다는 것은 넌센스다.


스즈키 이치로는 출루율의 구조가 안타에 극도로 집중되어 있어, 타율을 중시하는 전통론자에게는 높은 지지를 받아왔지만, 볼넷의 가치를 격상시켜 출루율을 중요하게 생각한 빌리 빈의 소위 아웃을 잘 당하지 않는 야구와는 배치되는 선수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이치로는 좀처럼 더블플레이를 당하지 않는 선수로 유명하다.

올시즌엔 불과 단 한개의 더블플레이 타구만을 날렸을 뿐이다.

빌리 빈의 아웃을 잘 당하지 않는 야구에 있어서 한번에 두개의 아웃카운트를 소비하고 마는 병살타를 좀처럼 치지 않는 이치로는 충분히 평가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아웃카운트를 최대한 소비하지 않는 것을 지향한 빌리 빈의 야구관에 있어서 병살타를 치지 않는 능력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면 빌리 빈의 야구와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이해되어 왔던 스몰볼도 결코 그렇게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병살타를 좀처럼 만들지 않는 타격은, 바로 스몰볼의 기본 개념인 생산성 있는 아웃카운트를 위한 타격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루상의 주자를 죽이지 않고 자신은 아웃이 당하더라도 루상의 주자는 다음 베이스로 진루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스몰볼에서 고평가를 받는 타격이다.

그런 스볼볼 지향적인 타격은 곧 병살타를 줄임으로써 빌리 빈이 강조했던 아웃을 잘 당하지 않는 야구관과도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스즈키 이치로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대표적인 타자이다.

전통적인 야구관에 입각해서 야구를 보느냐, 아니면 이를 뒤엎는 혁명적인 야구관으로 생각되어지고 있는 빌리 빈의 야구관을 추종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엇갈린다.


그러나 빌리 빈의 야구관에 경도된 야구팬중의 하나인 나이긴 하지만 대세와는 무관하게 이치로를 가장 좋아한다.

그런 나의 태도는 전혀 이율배반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빌리 빈의 아웃카운트를 극도로 소모하지 않는 야구에 병살타를 좀처럼 치지 않는 이치로의 장점은 커다란 메리트가 되며, 그런 이치로의 타격은 생산성 있는 아웃카운트를 강조하는 스볼볼과도 연결된다.


나의 견해로는 빌리 빈의 야구와 전통적인 야구관의 범주아래 놓여있는 스몰볼은 반드시 상충되는 것만은 아니다.

기껏해야 다르다고 한다면 굳이 생산성 있는 아웃카운트를 위해 아웃카운트 하나를 소모할 것을 각오하고 번트를 대는 스몰볼이 빌리 빈의 야구와는 배치된다라는 정도일까?


이치로는 참 재미있는 타자다. 그는 요즘 커다란 지지를 받고 있는 각종 세이버메트릭스 타격이론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 타격을 한다.

안타에 극도의 가치를 부여한 그만의 야구관에 입각해서 말이다.

아마 이런 그의 태도는 그가 은퇴할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그와 다른 관점에서 그를 비판하더라도 그는 철저히 자신만의 야구관에 의거해서 야구를 할 것이다.

그를 바꾸게 하기는 힘들다. 아무리 비판과 투정을 쏟아붓는다 하더라도....


그러나 그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의 타격은 빌리 빈의 타격이론과도 연결된다라는 것을 느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빌리 빈의 야구와 전혀 배치되는 타격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치로는 빌리 빈의 마음에 들기 위해, 혹은 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야구를 하는 선수는 아니다.

그는 오직 이치로식 야구관에 입각해서 야구를 할뿐이니까.


덧글

  • Reign 2009/10/07 23:47 # 답글

    빌리빈의 머니볼은 조금 다른 시점에서 입각해야 합니다.
    빌리빈 단장이 맡은 오클랜드 에이스의 상황과 당시 야구 상황, 그리고 선수 시장과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데요.

    대체적으로 선수의 평가를 5 Tool에 의해 평가하고 스카우팅 해왔던 시대에 단장이 된 빌리 빈은, 5Tool을 모두 갖춘 선수들의 시장 가격과 스몰 마켓인 오클랜드 팀의 사정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머니볼을 주창합니다.

    이를테면 당시엔 컨택팅, 히팅 파워, 스피드, 쓰로잉, 디펜스의 5툴을 야수의 기본으로 보고, 이 5tool중 무엇을 얼마나 갖추었는지를 선수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면, 빌리빈은 당시 사람들이 그닥 주목하지 않는 스탯에 주목했던거죠.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평가되지 않은 스탯...그것은 바로 선구안과 참을성이었습니다.
    이 두가지 요소가 잘 버무려지면 출루율이란 결과로 이어지죠.
    당시에만 해도 새로운 선수를 뽑는 기준에는 선구안은 몰라도 참을성이란 기준은 없다시피 했습니다.
    애초에 젊은 스카우트 대상들은 어떻게든 타율, 즉 컨택팅 능력과 히팅 파워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보통 때보다도 더 치려고 노력하기 마련인데, 본능적으로 그렇지 않은 타자들, 즉 스카우트 대상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던 스타일의 선수들이 빌리 빈에게는 "싸고 질좋은"선수들이었던 셈...

    빌리 빈의 머니볼은 물론 100%완벽한 이론도 아니고 선수를 측량하는 최고의 기준점도 아니기 때문에 무너지게 됩니다.
    물론, 돈이 있는 빅마켓은 5tool뿐만 아니라 이러한 출루율 있는 선수도 살 수 있으니 빌리 빈의 오클랜드는 원래 사던 선수들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같은 수준의 선수를 사올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전보다 효과를 보기 힘들어진게 사실이죠.

    어쨌든 빌리 빈으로썬 출루율이 아니라 "남이 주목하지 않는"부분에 주목하여 가격 대비 효용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현대 야구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 yama™ 2009/10/08 07:09 # 답글

    빌리 빈의 성공요인중 하나가 출루율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했기 때문인데,머니볼의 전파와 세이버메트릭션의 유행,야구이론의 발전등의 이유로 출루율이 더이상 블루오션이 아니게 되어버려..2000년대 초반같이 승승장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요.

    게다가 오클랜드는 스몰마켓팀이라..2억불의 페이롤을 가지고 있는 양키스조차 매년 플옵에 나가진 못하고 때론 암흑기도 겪는데,페이롤이 양키스의 4분의 1이 될까 말까한 오클랜드 역시 암흑기와 리빌딩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죠.빌리 빈의 대단한 점은 젊은 투수자원을 최대함 모음으로써 투수왕국을 재건할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리빌딩 기간을 최대한 줄이려 하고 있다는 점이구요.실제로 에이스의 팜시스템은 레인저스와 메이저리그 수위를 다투죠.2011-2012년 즈음엔 다시 플옵에 나갈만한 전력을 갖출 수 있을 겁니다.
  • wizard 2009/10/08 22:55 # 답글

    다들 같은 의견이시군요. 빌리 빈은 기존의 야구관에서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출루율에 주목하여 효과에 비해 저렴한 몸값을 가진 선수들을 다수 확보할 수 있었다라는 것이 성공의 요인이라는 생각말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출루율은 블루 오션이 되어버려 머니볼의 무기가 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요즘 가치가 폄훼되고 있는 견실한 수비의 똑딱이 타자들을 끌어모아 반란을 일으키면 되겠죠. 안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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