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종말에서 말하는 보편적 가치와 동아시아, 한국의 근대사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란 책에서 보편적인 가치로 무장되어 있는 국가가 반드시 그렇지 못한 국가를 이겨왔으며 그것이 역사의 발전과정이며 그 궁극적인 보편적인 가치란 바로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했다.

제 2차세계대전은 대 파시즘 전쟁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 미국이 중심이 되어 파시즘 국가인 일본, 독일과 싸운 것이 바로 이 전쟁의 본질이며 결국 민주주의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영국과 미국의 승리는 역사의 필연이라는 것이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이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미국과 영국은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었을까? 당대를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영국은 제국주의 시대 세계최강국으로 가장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는 국가였고 미국 역시 아메리카 각국을 종속시키고 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적 세력확장을 꾀하던 중이었기때문이다.

당시의 보편적인 가치란 탈제국주의요 민족자결주의였다. 그런 관점에서 볼때 영국과 미국은 보편적 가치에서 가장 동떨어진 국가였다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이 자랑하는 민주주의란 그저 자국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해외식민지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일본이나 이미 전부 박탈되어 있던 독일이 인류의 보편적가치의 훼손이란 측면에서 보다 자유로왔던 측면도 있다.
믈론 전시중에 행했던 독일 나치의 인류의 우성학적 관점에서 행해진 잔인하 홀로코스트는 나치즘의 사악성을 여실히 잘 말해주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
왜냐하면 일본이 내걸었던 전쟁의 명분, 이념이었던 대동아공영권은 서구열강의 제국주의가 유색인종에게 행했던 악랄한 식민지배에 대한 대항이었고 이것은 당대 상당한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념이었기때문이다.
물론 일본은 자국을 정점으로 하는 아시아 질서를 구축하여 서구에 대항하자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이 이념자체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당대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는 소위 민주주의 국가라는 서구의 식민지해하에서 노비상태의 상황에 놓여져 있었기때문이다.

독일이 내건 이념은 게르만민족의 우월성을 보편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은 대아시아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당대의 제국주의를 타파하고 민족자결을 쟁취한다라는 것이 보편적인 이념이었다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일본은 대부분의 국가가 서구열강의 식민지였던 당시 아시아의 상황에서 꽤나 먹힐 수 있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대아시아주의와 서구제국주의와의 싸움이었고 이런 구도라면 일본쪽이 보편적 가치란 측면에서 우위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일본이 패전하긴 했지만 결국 일본의 군정하에서 독립을 쟁취했던 인적자원의 육성을 기했던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등이 재식민지화를 노리던 서구열강을 몰아내었던 것으로 서구제국주의에 대한 대항이 주이념이었던 대동아 공영권의 이념은 실현되었다.
당시 상당수의 구일본군의 인사들이 독립전쟁에 참가하여 싸웠는데 이들은 대동아공영권의 이념의 관철이라는 입장아래 자국이 패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웠을 것이다. 이것이 이데올로기의 힘이다.
일본은 패전했으나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념은 승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이념은 일종의 명분으로 실상은 아시아지역에서의 일본의 우위성을 확립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다.
나는 이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필자는 대동아 공영권이 가지고 있는 명분이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이야기했던 보편적가치란 개념에서 볼때 당대의 아시아에서 상당한 설득력과 위력을 가질 수 있었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며 또 그런 보편적 가치의 힘이 있었기때문에 결과적으로 서구열강의 제국주의는 결국 아시아에서 종막을 고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실제로 아시아 각국의 독립년도는 아프리카에 비해 20여년 빠르다라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혹성탈출이라는 영화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의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원숭이에 의해 인간이 지배당하는 상황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런데 원작자가 이같은 소설을 구상화게 된 모티브가 구일본군에 의해 포로생활을 했던 경험에서 나왔다라는 것을 알고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백인우월주의가 팽배했던 당대, 유색인종인 일본군에 의해 백인인 자신이 포로가 되어있는 상황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원숭이의 행성이라는 소설의 모티브가 마련되었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원숭이는 누구겠는가? 바로 비백인, 유색인종이다. 당시 백인들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유색인종을 업신여겼고 깔보았다.

일본인들은 어디까지나 시대상황에 맞게 자국의 생존과 국익을 지키기 위해 행동했을 뿐이다.
처음 일본인들이 내걸었던 대아시아주의는 아시아 각국의 평등한 관계에서의 연합이 주된 내용이었으나 힘이 커지자 탈아론이 나왔고 그 이후 서구가 주도하는 국제사회의에 대한 협조주의노선을 걷다가  서구와의 대립이 격화되자 일본을 맹주로 하여 서구의 식민지배를 아시아에서 몰아낸다라는 대동아 공영권을 들고나왔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위해 계속해서 입장을 바꿨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인류역사상 본의아니게 크나큰 전환점을 마련했다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백인의 인종차별의 근거가 되었던 백인의 유색인종에 대한 우월의식에 대하 정면도전과 그것의 파괴를 해낸 것은 일본이고 실제 서구가 느꼈던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또 반면 피지배상황에 놓여있던 유색인종들에 대해 엄청난 자각과 자신감을 불어넣었다라는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국제연맹의 상임이사국이었던 일본은 인종차별을 금지하자라는 가결안을 상정하였다가 부결당한 경험도 가지고 있어 유색인종 국가들의 대표라는 지위구축에도 성공하고 있었다.

아직도 전세계적으로 인종차별은 여전히 잔존하고 그것의 극단적인 형태가 바로 일본의 동맹국이었던 독일의 나치즘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에 비하면 엄청나게 묽어진 것이며 인류사상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은 명백하게 일본이었다.
나는 한국인으로 아무리 일본이 밉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반드시 인정하고 넘어가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보편적인 가치판단하에서 말이다.

이제 21세기다.
그런데 아시아에서는 아시아세력이 결집하여 서구세력에 대해 대항해야 한다라는 아시아연대사상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국가가 하나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고 외교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한국과 일본은 서구의 꼭두각시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했던 시기와 다르다. 현재 아시아에서 서구에 의해 노비적 식민지배를 받고 있는 국가가 있는가?
지금은 제국주의 대 민족자결주의의 시대가 아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설했던 비민주주의와 민주주의 대결구도가 아시아에서는 펼쳐지고 있다.
지금의 보편적 가치는 엄연히 민주주의이며 따라서 아직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근거로 일당독재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이 보편적가치에서 열등한 위치에 있다.

그리고 중국의 아시아 연대론은 과거의 일본처럼 중국을 우월적인 위치에 놓고 철저히 자국의 가치판단을 군사력, 경제력을 총동원하여 강제한다.
또 웃긴건은 중국은 과거 제국주의 대 민족자결주의의 구도에서나 보일법한 제국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바로 티벳과 위구르의 독립운동을 강권에 의해 억합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중국은 보편적 가치에 있어서 우월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중국의 아시아연대론이 공허하게 들리며 과거 일본이 들고나왔던 대동아공영권보다도 그 설득력이 없다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시켜주는 하나의 빌미가 되어주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명분은 북한과 중국의 안보상의 위협에 대해 군사적 균형을 맞춰준다라는 데 있으니까 말이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목적은 원래 일본의 방위가 아니라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막음으로써 역내 힘의 밸런스를 유지한다라는데 있었다.
그런데 중국의 군비확충과 북한의 군사위협은 오히려 일본 자위대의 전력업의 명분이 되었으며 급기야는 일본내에서 헌법개정을 통한 국방군의 창설이라는 담론까지 나오게끔 만들었다.
중국위협론은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일본위협론을 묽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여 일본의 군사적 태두의 빌미를 제공한 꼴이 된 것이다.

한국과 중국언론에서는 일본의 우익화를 비난하고 경계하지만 사실 그것을 도와준 것은 북한과 중국이며 또 일본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 것이 자신과 인접하고 있는 중국과 북한이 고도로 무장된 군을 유지하고 있다라는 점에서 평화헌법을 계속해서 유지해간다라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판단을 해야할까?
필자는 민족주의 아시아주의 혹은 중국에대한 수출의존도에 따른 경제지상주의 모두를 배제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역시 따라야 할것은 당대 보편적인 가치인 민주주의다.
중국과 북한은 독재국가이며 군사적팽창을 끊임없이 기도하며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유도하는 역내 불안정의 대부분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또 중일관계의 파탄과 남북관계의 파탄이 말해주듯이 가치관의 공유, 근본적인 신뢰없이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평화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사상누각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일본에 벌인 경제전쟁, 남북의 정치적 긴장이후 발생한 경제교류의 경색은 이를 잘 말해준다. 독재국가인 이들은 정치와 경제를 구별하지않기때문이다.
경제행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리스크가 없어야 한다라는 것이 아닌가?

단언하건대, 중국과 북한이 민주화되지 않는 이상 즉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관의 공유없이는 관계발전은 없다라는 점이다.
여기에 아시아연대론, 민족주의등은 전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또 일본 민주당의 하토야마 전총리가 주창했던 우애외교등은 모두 가치관의 차이를 서로 인정하고 선린관계를 구축하자라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모두 틀린 헛소리였다.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이상 신뢰가 쌓일 수 없고 이 신뢰가 없으면 관계는 조금도 발전할 수 업는 것이다.

한국은 일본과 역사문제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경제문제등이나 민간교류가 엄청난 타격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다.
왜냐하면 양국은 모두 민주주의 국가이고 서로가 예측할 수 있는 합리적 규범과 가치판단을 공유하기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공통되며 보편적인 가치관에 대해서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
솔직히 말해보자. 우리는 일본과 독도문제를 안고있지만 이것이 급기야는 군사적충돌로 이어질 것이라는 에측을 하는 사람보다는 이어도 문제때문에 중국과 충돌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생난리를 펴는 것이 아닌가?

그럼 이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중국은 위험한 독재국가인 반면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이기때문이다. 바로 신뢰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반일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일본을 더 신뢰하고 있다.
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이야기했던 민주주의의 보편적가치를 공유하고 있기때문이다.

난 현재한국사회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천박한 경제지상주의, 그리고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를 망각한 맹목적인 민족주의이다.
흔히 보수주의자들은 안보문제를 많이 거론하나 실제적으로 점차 점진되어 가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종속에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는다. 우리의 수출의존도는 90%애 달하며 또 그 중에서도 중국의 비중은 점차 켜져가고 있다.
센카쿠 열도 문제로 중국이 일본에 대해 취한 경제적보복을 그저 단순히 남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되다.
중국은 정치적 의도에 따라 경제, 민간교류에 대해 많은 리스크를 안길 수 있는 상대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지 않았는가?
만일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그래서 우리는 내수의 확대가 필요하고 서민들의 구매력 향상이 필요한 것이다.
대기업중심의 수출에 편중된 경제구조야말로 안보문제에 크나큰 장애물이다.

또 북한을 단순히 같은 민족이라는 점에서 낙관적으로 보려하는 시각이다.
심지어는 북한이 핵을 가지게 되면 우리민족이 핵을 가지게 되는 것이므로 나쁠 것이 없다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북한과 우리는 전쟁을 치루었던 상대고 또 가치관에 있어서도 극명하게 다르다.
따라서 신뢰성도 없다.

오히려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상대는 일본이다. 이들은 우리와 같은 가치관 민주주의를 공유하고 있기때문이다.
독도문제가 존재하나 어디까지나 이런 영토문제는 별도로 다루며 지나치게 감정싸움으로 치달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어차피 실효지배는 우리가 하고 있다. 일본의 행동은 예측가능해서 중국이 센카쿠에서 행하는 수준의 공격적인 자세는 취해오지 않을 것이기때문이다.
또 일본은 이 영토문제를 경제영역이나 민간교류영역으로 확장해올 위험성이 중국보다 훨씬 적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 만일 중국과 한국이 이어도 문제로 쳠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그가 이와 같은 용기를 보여준다면 정말 고맙겠으나 사실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중국과 같은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패권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국가를 상대로 얼마만큼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는 심화되어 가는 마당에 대기업의 눈치를 보아서라도 그렇게 못할 것이다.
사실 일본의 대응이 무르기때문에 안심하고 그럴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 이건 오히려 일본국민들의 감정을 반한으로 돌리고 일본국방군의 창설과 군사대국화의 여지를 스스로  만들어주는 꼴이다.

마지막으로 보편적가치와 관련해서 한국의 반일교유과 반일감정에 대해서도 다뤄보고자 한다.
필자는 왜 우리는 편협하게 반일을 내세웠을까에 대해서 불만이다. 왜 보다 보편적인 가치인 반전, 반제국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단순한 반일은 자칫하면 저급한 인종차별주의로 낙인찔힐수 있기때문이다.
보다 보편적인 가치인 반전, 반제국주의의 틀에서 일본의 한국지배를 조망했더라면 보다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리에게도 보편적가치에 입각한 올바른 행동의 규범이 확립되었을 것이다.

단순한 반일과 그것을 초월한 반전, 반제국주의 관점은 명확한 차이를 낳는다.
반일은 일본이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우리가 되갚아주는 것은 하등의 죄악이 아니게 된다. 아무리 그것이 보편적 가치에서 벗어난다 하도라도 그러나 인류사회는 점차 보편적인 가치가 중요해지는 과정에 있다. 이런 접근은 필경 비판을 부르기 마련이다.
중국이 이를 잘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00여년전 서구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신음했던 이들은 단순히 반서구 반일사상이란 편협적인 민족주의에 젖어 지금 그들이 당한던대로 되돌려준다라는 인식에 머물러 있고 그것은 보편적가치에서 어긋나 있으며 그렇기에 비판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중국처럼 되는 것은 필자는 원치 않는다.

난 반일 교육과 반일 정서를 싫어한다. 그것 가체로는 인종차별과 다를바 없기때문이다.
그보다는 보다 고차원적인 보다 보편적인 가치체계하에서 우리는 일본을 비판할려면 비판해야 하고 또 그것이 국제적인 설득력을 가지게 될 것이며 또 그것이 우리 국민의 행동양식을 보다 세련되게 만들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보편적 가치의 중요성을 잘 역설해주었고 그것은 아시아의 역사 또 한국의 근대사에 있어서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난 적어도 이것이 아와 비아의 싸움이라는 약육강식의 세계질서를 긍정한 신채호 선생의 역사인식보다는 더 통찰력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긍정해버린다면 선과 악의 구분이라는 것이 불필요하다라는 것이 되지 않은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인식과 믿음이다.




















덧글

  • 零丁洋 2012/12/06 10:23 # 답글

    일리는 있네요. 하지만 이웃에 있는 악마를 나와 같게 만들 수 있나요? 그렇다고 모른 척하고 계속 대치하는 것이 현실적일까요? 그리고 민주주의는 영토와 인구가 작은 국가일 수록 제대로 이루어지는데 거대 국가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할 수 있는 모델일까요? 일본도 민주주의라는데 정당과 투표만 있을 뿐이지 정치 엘리트들의 세습으로 보여지 듯 느슨한 신분제적 체제라고 볼 수있죠. 저는 보편적 획일화 보다는 차이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더 유효하다고 봅니다.
  • wizard 2012/12/22 10:55 #

    네 문화적 다원주의에는 동의합니다먄 민주주의는 보편적인 가치임은 분명합니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자민당의 집권이 있어왔기때문에 비판받는 면이 있지만 실제 자민당은 일본 특유의 절충의 문화라고 할까요. 시기별로 태두되는 진보정당과 비공식적인 접촉을 하면서 그 정책을 수용한 사실이 있습니다. 일본인은 전통적으로 극단적인 대립이나 파국을 부르는 것을 싫어하죠. 천황제가 지금까지 유지되는 이유도 다 여기에 있습니다. 전 일본관련쪽의 일을 하고 있고 누구보다도 일본인의 습성을 잘 압니다. 일본인의 단결력은 사실 파국을 부르기전에 줄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습성떄문이죠. 따라서 자민당의 장기집권을 가지고 일본의 민주발전을 폄하할 필요가 없습니다.
  • wizard 2012/12/22 11:04 #

    제가 느낀 일본인들의 특징은 리스크 회피에 대해 매우 철저합니다. 일본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배려가 깊은 것은 내가 지금 배려해주면 내가 같은 상황에 쳐했을 떄 내가 배려받을 수 있다라는 일종의 보험심리입니다. 일본인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무언의 상호보장인 셈이죠.ㅣ
    이런 일본인들의 습성은 대외관계에서도 나타납니다. 일본인은 약속이나 룰을 잘 지키죠? 리스크 회피성향의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맘 편하기 때문입니다. 전 일본인들이 국제관계에서도 조약이나 룰에 대단히 집착하는 경향을 많이 발견합니다. 후쿠자와가 탈아론을 이야기할 때 중국은 국제법을 모른다라고 비판하죠? 제가 볼때 중국인과 일본인은 절대 친해질 수 없습니다. 성향자체가 달라요. 중국인은 기회주의적입니다. 힘이 한신의 고사처럼 힘이 약할 때에는 머리를 숙이지만 힘이 강할 떄에는 한없이 오만방자합니다. 중국인은 약육강식의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잘 체험하고 있는 민족입니다. 반면 일본인들은 룰을 따르기 좋아하죠. 그리고 고집스럽게 그 룰을 지키려고 하고 그 룰을 깰떄 분개합니다. 일본인들의 혐한감정과 혐중감정의 근저에는 이런 의식이 있습니다. 분명 중국과 한국과 이런 약속을 했는데 이것을 꺠고 요구를 해온다 이것 자체가 일본인들의 문화에는 믿을 수 없는 민족이다라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죠. 일본인은 논리를 좋아하고 한국인은 감정을 좋아하며 중국인은 힘을 좋아한다 이것이 이 삼국을 경험할 수 있는 일을 해온면서 느낀 특징입니다.
  • 이성 2012/12/06 02:35 # 삭제 답글

    "아시아의 보편적 가치가 대동아공영?"
    "반일이 인종차별?"
    보편이란 단어를 아주 자의적 편의적으로 사용하시는 거같습니다
    논리에만 중독되면 법리만 가지고 엉뚱한 판결 내리는 판사들 오류와 같은 우를 범하는 법이죠
    보편은 사람에게 인간애를 바탕으로 합니다.
    '인간애'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시대정신에 당연히 앞서는 원리죠
    엉뚱한 이야기는 앞으로 접으시고
    공놀이 해설은 봐줄만합니다
  • wizard 2012/12/09 19:27 #

    글의 요지를 잘 이해하세요. 당대 아시아에서 일본이 내세운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가치가 적어도 아시아의 식민종주국들보다는 명분에서 앞서있었다라는 점을 말하는 것 뿐입니다.
  • 이성 2012/12/06 02:56 # 삭제 답글

    그리고 반일하는 이유는 아직도 제국주의 근성을 못버리는 일본에 있는 것인데
    "반일과 반제국주의를 구분해서 생각하자고?"
    먼말하는 것인지 원숭이 자식같은 말만 늘어놓네요
  • wizard 2012/12/09 19:26 #

    단순한 반일은 인종차별로 갈 수 있다라는 점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어하지 말라는 말이 있죠?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하게 생각해보셨는지요. 과거 반유태사상이 전유럽으로 확산된 것중 하나는 그들이 주로 종사하던 직업이 금융고리업이었기때문인데 이것을 반유태인 민족감정으로 치달았던 것이 이후 끔찍한 홀로코스트란 광기를 불러일으켰죠.
    지금 한국에서 보이는 반일감정은 인종차별로 보일 수 밖에 없어요 넷상에서 보여지는 그 숱한 막말등을 보세요. 객관적으로 보면 이것은 명확한 인종차별입니다. 일본정부를 비난해야지 일본국민까지 끌어들여 일본인전체에 대해 공격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과거 중국의 주은래는 침략전쟁을 벌인 일본정부를 미워할 수 있지만 일본국민에게는 죄가 없다하면서 만주에 일본인 위령비까지 세워주는 인도주의를 보여주었습니다.
  • wizard 2012/12/09 19:33 # 답글

    저도 이해와 관용이 유효하다라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적어도 정책결정이 소수의 몇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독재체제는 붕괴되기 마련이며 그것이 역사의 발전의 방향성이라는 후쿠야마 교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물론 민주주의를 완벽하게 이뤄내는 국가는 없습니다. 미국조차도 여전히 그것에 실패하고 있구요.
    하지만 민주주의가 최고의 선이라는 가치관은 분명히 정립되어 있죠.
    전 우리는 역사의 발전단게에서 매우 후진적인 두 국가를 이웃에 두고 있는 매우 불안정한 입장에 있다고 봅니다. 봉건적 왕조국가 북한, 타민족을 무력으로 지배하는 제국주의 독재국가 중국말이죠.
    흑흑 대치하는 것을 바라진 않지만 현실적으로 조급하게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라는 환상은 버려야한다고 봅니다. 가치관의 공유, 신뢰는 이들이 바뀌기 전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몽상적 접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 이것에 불쾌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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