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전후국경확정과 일본의 차이점

1945년 포츠담회담을 통해 2차세계대전 종전후의 독일 폴란드 국경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그렇게 해서 확정된 선이 오델 나이세 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확정된 국경선이 아니라 잠정적으로 결정된 것일 뿐이다.

독일과 폴란드의 새로운 국경선으로 오델 나이센 선이 잠정결정된 것은 독일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주었다.
왜냐하면 이 지역에서 수백년에 걸쳐 거주해왔던 독일계 주민들이 일제히 추방된 것은 극도의 상실감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번즈가 1946년 행했던 연설에서 미국은 국경선을 폴란드에 유리하도록 설정하는 것을 지지하지만 폴란드에 할양된 지역의 범위는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는 서독의 지지를 받기 위한 하나의 포석이었는데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선은 여전히 확정된 것이 아니었으며 미국은 이 사실을 서독측에 분명히 확인시킨 것이라 하 수 있다.

물론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동독은 오델 나이세선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서독정부가 이것을 받아들일까란 문제는 남아있었다.
그런데 서독은 동독을 국가로써 인정하고 있지 않았기때문에 따라서 동독과 수교관계를 맺고 있던 나라들과도 국교를 맺고 있지 않았다. 서독과 폴란드간의 국경선확정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독일과 폴란드가 국경선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하게 된 것은 1972년 독일과 폴란드가 국교회복을 하게되면서였다.
이 조약의 조문중 오델 나이세 선이 사실상의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이라는 것에 대한 서로의 확인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공산국가인 폴란드에 대한 인정문제와 함께 크나큰 논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독일 연방회의의 비준을 얻게 된다.

하지만 사실 이 국경선 합의의 조문은 매우 애매모호한 면이 있다. 사실상의 국경선이라는 의미는 이것이 확정된 국경선이라고 공식적이라고 인정하기보단 현실적으로 국경선으로 기능하고 있다라는 사실에 대한 확인정도의 의미이기때문이다.
동서데탕트의 분위기속에서 급하게 서둘러진 면에서 중일국교수복과도 연관성이 보인다.

결국 독일과 폴란드가 공식적으로 국경선을 확정한 것은 1990년 독일 재통일의 직전이었다.
1950년 동독과 폴란드가 소련의 압력하에 체결했던 국경선 확정조약인 즈고제레츠조약은 40년이 흐른후에야 서독정부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서 확정된 것이다.

이는 같은 패전국인 일본의 독도문제와는 명확한 차이가 존재함을 이야기해준다.
독일의 경우 이미 1950년에 동독정부가 폴란드와 최종적으로 국경선을 확정하는 조약을 체결했으나 일본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이 국교회복을 했지만 그 때에도 독도문제는 미해결상황이었다.
그리고 한국이 독도를 점령한 것은 1954년인데, 이미 일본은 1952년 전후 일본의 국경선을 확정하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은 상태였고 이 조약의 결과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이 확정된 바가 없다.

사실 법리적으로 해석하면 독도는 한국의 하자없는 영토라고 확정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난 근본적으로 일본과 국교수복을 진행했던 주체였던 박정희정권의 책임이 매우 크다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 때 우리가 강력하게 독도는 우리의 영토이며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국교수복을 조금도 진행할 수 없다라는 강력한 의사를 전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지금의 일본과 러시아의 관계가 되었을 것이다.
일본은 전후 소련과 일소공동성명을 통해 유엔에 가입했지만 영토문제의 해결이 완전하지 않았기때문에 정식으로 국교수립은 하지 않았으며 사할린남부와 쿠릴열도는 여전히 국제법상으로 미귀속지역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좀더 법리적으로 정당성을 가지려고 했다면 결코 일본과의 국교회복을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군사정권이 가지는 정통성의 부재를 경제발전으로 만회해야 했고 그러기위해서는 일본의 자본이 필요했으므로 졸속으로 한일 국교수복을 진행한 것이고 그것이 지금까지 화종으로 남아있다.
이승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NLL문제도 그렇지만 일방적인 선언에 이은 점령으로 지금까지 그 화종을 남기고 있지 않은가?

국제관계의 외교라는 것은 조약을 기반으로 하고 그것은 그 조약에 대한 철저한 이행이 절대적인 요소다. 그 신뢰성을 잃어버리면 외교라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국제관계에서 지나치게 외교젹 조약의 법리적 해석은 무시하고 국민감정에만 치우친다.
그런데 이것의 무서운 점은 무엇인줄 아는가? 이렇게 되면 국제적 문제의 해결은 오로지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로만 이루어지게 된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외교적 노력으로 이루어진 조약에 대한 철저한 이행이 필요하다.
최근 중국과 일본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센카쿠열도문제도 근본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국교회복조약의 조항을 지키고 있지 않기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중국은 분명히 상대국의 영토보전을 약속하고 인정했다. 그렇다면 자연히 중국은 그 약속을 지켜 센카쿠열도에 대한 영유권주장을 하지 말았어야한다.

만일 조약에 대한 성실한 의무를 저버리고 세계각국이 국민감정에 의거하여 요구를 내놓기 시작한다면 한도 끝도 없다.
우선 독일이 폴란드와 맺었던 국경확정조약을 폐기할 것이다.
독일과 폴란드는 결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사이좋게 국경선을 확정짓고 아무런 갈등없이 지내는 것이 아니다.
국경선은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프로이센 지방에서 강제로 추방된 독일인들의 재산청구권은 여전히 양국의 화종으로 남아있다.
추방된 독일인들은 독일정부에 끊임없이 보상을 요구하지만 독일정부는 묵묵부답이다.
그래서 폴란드 정부에 청구권을 요구하면 폴란드 정부는 독일에게 전쟁피해보상을 하겠다고 강경하게 맞선다.

사실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저 언론에서 주목하는 것은 중국과 한국의 일본정부에 대한 피해보상뿐이지만 중국과 한국에 재산을 몰수당한 일본인들의 청구권은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지만 지금까지 일본인들이 중국정부나 한국정부를 상대로 청구소송을 했다라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사실 일본정부는 중국, 한국과 국교를 회복하면서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배상하지 않는다라는 약속을 얻어냈다.
그렇지만 우호증진을 위해 한국에는 독립축하금을 제공했고 중국에는 지금까지도 막대한 금액의 ODA를 해오고 있다.
국민감정을 떠나 법리적으로 해석하면 약속을 위반한 것은 한국과 중국이다.

내가 우선 개탄하는 것은 한국정부와 중국정부가 자국의 국민들을 상대로는 반일감정을 일부러 고양시키면서 일본정부와는 어떠한약속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한다라는 것이다. 정권유지를 위해 어두운 부분은 감추고 불만은 일본으로 돌리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국민들은 한국과 중국은 신의를 지키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상대로 이미지화된다.
난 우선 중한과 일본이 화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정부와 중국정부가 자국국민들을 기만했으며 정권유지 차원에서 일본에 접근하면서 국민들에게는 반일에 철저하다라는 모순적인 프로파간다를 해왔다라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첫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힘의 논리는 분명 파국을 부른다. 향후 세계질서를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가치에 입각한 논쟁과 그로인해 체결된 조약에 대한 철저한 이행, 즉 국제법상의 법리가 세계분쟁의 해결수단이 되어야만 한다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만일 민족감정에 철저히 의존하여 각국이 자신의 주장을 부르짖는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앞서 독일과 폴란드의 파탄의 가능성을 이야기했지만 러시아의 극우민족주의자들은 알래스카의 수복을 이야기한다.
또 중국에서는 제정러시아에 빼앗긴 연해주를 되찾아야한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에서는 고거 고구려의 영토였던 만주를 되찾아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스탈린이 전후 독일의 국경선을 확정지을 때 내세운 논리는 중세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렇게 따지면 전세계국가가 영토분쟁으로 끊임없이 전쟁을 해야할 것이다.
















덧글

  • 산마로 2012/12/17 17:48 # 삭제 답글

    어느 모로 보나 독일 역할을 해야 할 나라는 일본이지요. 민족감정에 철저히 의존하여 한일관계의 문제를 증폭시키는 쪽이 일본인 것은 님의 글에서도 아주 명확합니다. 통일 독일은 어디까지나 서독을 계승하며 서독은 국경 문제를 미해결한 상태로 1972년에 폴란드와 국교회복을 했죠. 1990년에 서독이 동독의 조약을 인정한 것은 독일이 폴란드에게 역사적으로 큰 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일본이 독일의 본보기를 따라야 하는 것은 님의 글의 당연한 결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wizard 2012/12/18 14:36 # 삭제 답글

    강화조약을 통해 국제법상 효력이 발생한 기성사실을 불복하고 자국의 논리대로 무력으로 관철시키는 것은 그럼 바람직함 것일까요?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정말 많은 혼란이 따르겠죠. 서독도 그렇기 때문에 국경확정을 추인한 것이구요. 일본의 태도는 강화조약의 내용에 의거해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인데 한중러 모두의 입장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자체를 부정하는 겁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이러함 태도가 자민족중심의 민족주의입니다 민족감정에 따라 얼마든지 국제적조약의 구속력도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럼 과연 어떻게 대화와 협상을 통한 외교로 평화적인 문제해결을 해나갈 수 있을까요? 보다 넓은 시각에서 보았을 때 그렇습니다
  • wlzard 2012/12/18 14:44 # 삭제 답글

    독일의 사례는 역사수정주의의 대표적 발로인데 이건 해도 좀 너무했죠 스탈린은 중세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독일의 영토를 뺏었으니까요. 만일 그런 논리대로하면 러시아는 군말 없이 연해주를 중국에 돌려줘야겠죠. 아니 우리는 만주를 중국에게 요구해야겠군요 그럼 일본은 임나일본부를 근거로 한반도 남부를 요구할려나? 보세요 비이성적인 잔쟁의 원인은 바로 과거에 연연한 역사수정주의때문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길은 체결된 조약에 의거 상호국의 영토보전을 확고히 지키는 것이 근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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