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말해주는 프랑스의 팽창주의적 민족주의

어린 시절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란 작품은 내게 프로이센에게 병합되게 된 알자스지방 프랑스인의 비애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소설속 주인공인 소년은 지각을 하게 되자 선생님에게 혼날 것을 두려워하며 학교에 서둘러 가게 되나 선생님은 여느 때와 달리 꾸중은 커녕 상냥하게 자리에 앉으라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국어시간이 시작된다. 이 수업은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시간이다. 프로이센병의 수업의 종료를 재촉하는 나팔소리가 들리자 소설속 선생님은 말을 잃지 않으면 설사 노비가 되더라도 감옥의 열쇠를 갖고 있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며 프랑스어의 우수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수업을 끝내기전 울먹이며  칠판에 프랑스 만세라고 휘갈긴다.

한국의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이 작품은 국어의 중요성을 학생들에게 알리는데 더도 없이 좋은 작품이었다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알자스지방의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된 이후에야 비로소 이 작품이 얼마나 실제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며  피해자로 여겨졌던 프랑스의 민족주의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사실 알자스지방은 계르만계민족들이 살아오던 지역이었고 이들은 당연히 독일어를 썼다. 그러던 중 절대왕정하의 프랑스가 이 지역을 탐내게 되자 프랑스와의 충돌을 두려워한 신성로마제국이 이 지역을 프랑스에게 할양하기에 이른다.
이 지역을 차지한 프랑스는 지속적으로 알자스주민들에게 프랑스어를 강제하여 언어적인 동화를 꾀하지만 이들은 좀처럼 자신들의 말을 잃지 않았고 프랑스어는 좀처럼 침투하지 못했다.

소설속 소년도 당연히 독일어를 썼고 소설속의 선생은 프랑스정부의 동화정책에 따라 이들에게 프랑스어를 침투시키기위해 프랑스어를 가르쳤던 것뿐이다.

오랫동안 프랑스와 독일이 분쟁을 거듭해왔던 알자스 지방은 사실 그 갈등의 원인은 프랑스의 절대왕정이 영토적야심에 의해 이지역을 병합한데서 출발한다.
또 프랑스는 알자스 지방의 독일인들을 어떻게든 프랑스인으로 동화시키기위해 강압적으로 프랑스어를 보급하려 했다.
그리고  알자스지방의 학교에서 독일어교육이 인정된 것은 1999년에 이르러서였다.

흔히 우리는 프랑스의 톨로랑스를 많이 이야기한다. 문화가 다르든 인종이 다르든 그것으로 인한 차별을 행하지 않고 관대하게 껴안는 프랑스인의 기질을 말한다.
하지만 사실 프랑스인들은 매우 민족주의가 강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언어다. 그들이 관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이들이라면 모두 프랑스인으로 간주한다라는 것이다. 나쁘게 말한다면 프랑스어를 강제적으로 이식시키고 그 언어적 동질성을 이유로하는 침략주의적 발싱이 불거져나올 개연성이 매우 크다.

반면 사실 독일인들은 프랑스처럼 강력한 민족주의를 내세운 적은 역사적으로 볼때 거의 없다.
신성로마제국은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강제하지 않은 가운데 같은 독일인임에도 지역의 영방국가들의 대폭적인 자치권을 인정한 가운데 국가연합과 같은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독일이 중앙집권화된 민족국가를 세운 것은 비스마르크시절이 처음이다. 그리고 보불전쟁에서 독일이 프랑스로부터 관철시킨 것은 독일인의 민족국가 성립을 인정시키는 것, 그리고 원래 독일인의 거주지역이었던 알자스지방을 되찾은 것 뿐이다. 매우 관대한 조치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제1차세계대전에서 승리하자 알자스지방을 다시 빼앗고 독일인들의 분개를 사게한 가혹한 베르사이유 체제를 성립시켰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보여준 독일의 악행과 침략은 도저히 인류의 양심으로 볼때 용납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특히 유태인을 비롯한 소수민족에 대한 조직적인 학살정책등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하지만 독일이 긴 역사적 안목으로 볼때 민족주의에 근간한 팽창주의와는 매우 거리가 먼 나라였음은 확실하다.
이들은 중앙집권화와 강력한 부국강병화를 주장하기는 커녕 오랫동안 소규모 영방국가들의 연합체로서 신성로마제국을 유지했고 선거를 통해 황제를 선출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었기때문이다.

유럽통합운동에 독일이 주도적 위치에 있는 것도 독일의 역사와 관련이 깊은 것은 아닐까?
독일은 오랫동안 국가연합체를 운영해왔던 역사가 있지만 프랑스는 이것과는 거리가 멀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절대왕정하의 중앙집권국가를 만들었던 것은 프랑스였기때문이다.









 
 


덧글

  • 리리안 2013/01/28 11:42 # 답글

    그런데 신성로마제국이 독일인이어서 그런 체제를 가지게 된 건 아닐텐데요. 절대왕정을 이룰 힘이 없어서 그렇게 된거죠...그렇게 생각하면 일본의 근대화가 일본 봉건사회와 관련이 있다는 것과 비슷한 것 같네요.
  • wizard 2013/02/02 23:35 #

    게르만족의 분권적 전통이 분명 작용했죠. 프랑크 제국이 분열된 것도 게르만법에 따른 형제들에 대한 균분상속에 의한 것이었구요.
  • 검투사 2013/01/28 12:57 # 답글

    목수정이 네이버 블로그를 개설했을 때, 그녀가 "한국 마초들의 앵똘레랑스"를 언급한 글에
    프랑스인들이 베트남과 알제리에서 저지른 짓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리플로
    달았더니, 아예 블로그를 닫아버리더군요.,
  • 零丁洋 2013/01/28 13:58 # 답글

    지금이야 프랑스가 수준 높은 문화를 자랑하지만 중세에는 탐욕과 위선으로 똘돌 뭉친 기사들의 난투장이 아니었나요. 독일도 마찬가지인데 황제가 도유받으러 로마로 갈때 말이 좋아 호위무사지 강도단을 모으더군요. 당연히 이탈리아 북부는 비상경계령이 발동되죠.^^
  • 후이 2013/01/28 15:06 # 삭제 답글

    독일을 너무 좋게 평가하시는 듯
    마지막 수업에 대한 견해는 동감하지만
  • 재팔 2013/01/29 14:14 # 답글

    글쎄요?
    비스마르크 본인은 로트링엔 일대를 받을 생각도안했는데, 몰트케 등의 군 강경파와 빌헬름 1세의 의견으로 받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 점령 후의 알자스에서는 독일군이 알자스 주민을 무시했고, 어떤 개념 팔아먹은 소위 나으리가 시민을 칼로 내려치는 사건도 있습니다(이 사건에 관련해서 키케로 님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이 하나 있습니다).
    프랑스인들에게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죠.
  • wizard 2013/02/02 23:40 #

    알자스인들이 독일에 대해 실망했고 그래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강화해간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님이 언급하신 사건이 벌어지자 독일전역이 들끓으며 막나가는 독일군부세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녀나왔다라는 것도 알아야죠. 당시 독일국민들은 알자스에 벌어진 사건을 단지 자신들과 상관없는 점령지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치부하여 무관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프랑스인에게 가벼운 것이 아니었죠. 그러니 도데도 적반하장격인 마지막 수업이란 소설을 썼겠죠. 그러나 승전국 독일입장에서는 프랑스로부터 얻은 알자스는 원래 프랑스의 침략으로 잃었던 고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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