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오 히로부미와 정도전

일본의 경우 에도막부 시절 유교화가 급속하게 진행됨과 함께 만세일계라고 불리우는 일본천황가의 긴 역사가 일종의 국수적 자긍심의 원천이 되어갔다.
유교화되면 될수록 그 본가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 대한 열등감이 커질 수 밖에 없는데 그 본가인 중국에서도 왕조교체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반면 일본에서는 왕조교체없이 지금에 이르렀으니 일본이야말로 유교에서 말하는 충을 가장 잘 실현한 나라이며 따라서 일본이야말로 진정한 중화라는 사고에까지 이르게 될 정도였다.

하지만 일본인이 유독 충을 철저히 지켰다기 보다는 권위는 가지고 있으나 실제 권력은 갖지 못했던 일본의 천황의 특수성이 있었기에 그토록 오랫동안 왕조교체없이 왕실이 이어졌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실권이 없기에 실정에 대한 책임을 질 당위성도 없고 따라서 역성혁명의 당위성조차 찾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나라가 혼란스럽고 어지러워지면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저항적인 민심은 곧바로 왕에 향하였으나 일본에서는 천황이 아닌 실제 실권을 쥐고 있었던 막부의 쇼오군에게 향했던 것이다.

에도막부가 무너지고 신정부가 들어섰을 때 새롭게 태어난 일본의 기틀을 닦았던 이토오 히로부미는 소위 재상중심주의라는 정치사상적 기치를 내걸었다.
이는 중국식 전제왕권을 견제하고 재상이 이끄는 의회를 중심으로 나라를 통치해가는 시스템인데 본래 도막운동의 기본이념이 막부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천황에게 환수시키고 천황이 친정을 펼치는 제국다운 제국을 만드는 것에 있었으므로 이토오 히로부미의 구상은 많은 반감을 샀으나 이때 이런 반대세력을 잠재웠던 논리가 신성한 천황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즉, 천황이 현실정치의 전권을 쥐게 되면 당연히 실정의 경우 그 책임을 질 수 밖에 없게 되는데 그것은 있을 수 없다라는 논리였다.

그렇게해서 천황에게 절대권력이 집중되는 중국식의 전제군주형 정치시스템이 채택되는 것은 피할 수 있었으나 이토오 히로부미가 원했던 재상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재상중심주의는 결국 실현될 수 없었다.
천황의 지위는 어찌보면 에도막부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권위만 가질뿐 권력행사는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실권이 없다라기 보다는 정치에 대해 책임을 지지않는다라는 측면이 더 강했고 재상의 경우 그 권력과 권위는 에도막부시절의 쇼오군에 비해서 훨씬 약했다. 재상이 마치 에도시절의 쇼오군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가경영의 큰 공백이 초래되었다. 천황은 책임을 지지 않으며 실제로 나라를 이끌어가야 하는 재상에게는 그다지 큰 힘이 없다보니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불만과 주장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혼란을 빚다가 결국 군부가 실권을 장악하여 독재정치를 펴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토오 히로부미의 실패를 보면서 나는 조선의 실질적인 건설자로 불리우는 정도전이란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정도전도 왕권을 제한하고 사대부의 대표인 재상이 중심이 되어 정치를 펼치는 시스템을 구상했다.
세습제인 왕조제에서는 암군이 등장하면 나라가 결단나게 되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정도전은 사대부중에서 가장 현명한 인물이 실권을 쥐고 정치를 행함으로써 이러한 문제점을 막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도전의 시도는 왕권에 대한 위협과 도전으로 여겨져 결국 이방원에 의해 좌절되고 마는데 일본의 경우를 참고하여 생각해보면 정도전이야말로 오랫동안 조선왕조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노력했던 진정한 충신이 아닐까?
앞서이야기한대로 중국이나 한국에서 역성혁명이 발생했던 것은 황제나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시스템이었기에 실정이 있었을 경우 그 책임도 따르게 된다. 그것이 역성혁명의 근거다.
만일 정도전이 기획했던 것처럼 조선의 정치시스템이 흘러갔다면 조선의 왕은 실권은 가질 수 없을지 모르나 권위는 가지고 있으며 책임 또한 지지 않으므로 일본의 천황가처럼 역성혁명의 위험없이 오랬동안 존속할 수 있는 닫위성을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는 조선의 왕가입장에서는 큰 메리트다.
또 정도전의 의도대로 암군의 출현과는 상관없이 조선이라는 나라는 능력있는 이에 의해 통치되는 안정성을 얻을 수 있다. 왕가나 나라 모두에게 선이 되는 구조다.

이토오 히로부미가 일본의 정치시스템을 두고 고민끝에 헌법을 만들어낸 것이 1889년의 일이다. 그런데 그와 거의 유사한 고민속에서 시스템 구축을 시험했던 정도전은 그일을 14세기에 해내려고 하였다. 무려 500여년이 앞선일이다.
출발점에 섰던 조선이 얼마나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국가였는지.. 그리고 그것을 설계한 정도전이란 인물이 얼마나 시대를 앞선 인물이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덧글

  • ㅁㄴㅇㄹ 2016/07/17 19:17 # 삭제 답글

    막부시절 천황이 쇼군가에게 얼마나 푸대접을 받았고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일반 백성들은 천황이 있었는지도 잊어먹을 정도로 거지발싸개처럼 살았는데 이건 뭔 개소리여
  • JOSH 2016/07/17 22:29 #

    지금 쓴 덧글이 본문과 상충되는게 있나요?
    그렇게 가치가 없었던 천황의 위치에 대해 충분히 언급한 거 같은데...
  • 거지발싸개 2016/07/17 22:45 # 삭제

    거지발싸개 취급받던 시절은 쇼군도 동네 양아치에게 칼침맞던 시절이구요 교토에서 쫒겨서 단노우라까지 갔으면서 어린 천황은 계속 데리고 간 거나 요리토모 사후 난리 일으키고도 천황제는 존속했고, 그 거지발싸개가 세운 남조가 90년을 버틴거, 오다의 상경이나 그 이후 에도막부도 황가와의 수차례에 걸쳐 인척관계 맺은거 생각하면 누구 생각이 거지발싸개일까?
  • 나인테일 2016/07/17 23:01 # 답글

    그런 의미에서 정도전과 이토 히로부미는 모두 실패자이죠. 특히 정도전은 유능한 창업군주 패밀리 앞에서 신권정치를 입에 올려봤자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으니까요.

    결국 이 체제의 첫 성공자 타이틀은 로버트 월폴이 가져갈 수 밖에 없죠.
  • 키키 2016/07/18 00:19 # 답글

    메이지 유신이 '천황 너는 가만히 있어, 우리가 알아서 할게'가 아닌데 말이죠... 88공경사건부터 고메이 덴노가 얼마나 영향력을 행세했는데.. 사실상 도막파는 천황 눈치만 보고 살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토우는 당시 헌법을 주도적으로 만들었나에 대해서는 조금 의구심이 드는군요. 이와쿠라 도모미나 산조 사네토미 같은 쿠게들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지 않나싶습니다.
  • 2016/07/18 22:22 # 삭제

    사실 도막운동은 그 취지와 결과가 상반된 모순된 형태죠 그렇기에 이후 일본의 혼란이 설명됩니다
  • ㅁㄴㅇㄹ 2016/07/18 02:56 # 삭제 답글

    정도전 드라마가 극으로써는 재밌지만 역사관을 상당히 망쳐놨는데.. 세종이 한글 창제 할때도, 4군6진 개척할때도, 그외의 온갖 개혁적인 정책들을 추구할때마다 보수적인 조선의 사대부들은 대다수가 극렬히 반대했고, 태종이 구축해놓은 강한 왕권체제가 아니었으면 입안단계에서 좌절됐을겁니다. 단순히 세종이 태종의 아들이란 점을 무시하고 이방석의 아들로 태어나서 재상중심제가 자리잡은 조선의 군주가 됐다고 가정하면, 우린 지금 한글로 의사소통을 못하고 있을겁니다. 정도전 빠는 사람들에겐 미안한 사실이지만, 뒤져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 2016/07/18 22:28 # 삭제 답글

    한글은 어찌보면 사대부의 존쟂이유를 지우고 왕과 백성이 직접 소통하는 것이 목적이었을텐데 생각을 바꿔서 사대부가 왕권을 견제하고 한글을 매개로 백성과 손을 잡아 역사가 진행되엇다면 서구형 의회주의가 자생적으로 정착되었을 수도 잇죠
  • ㅁㄴㅇㄹ 2016/07/19 05:34 # 삭제

    사대부들은 한글 자체를 창제하는것도 반발하고 그후로 조선 멸망할때까지 500년간 한문 사용을 기본으로 삼고 백성에 비해 지적 우위를 점한걸 당연시하던 존재들인데 왜 님 멋대로 그들이 한글을 매개로 백성과 소통하는 평행세계를 만드시는지?
  • q 2016/07/19 22:20 # 삭제 답글

    테라코야아십니까? 일본의 사설 교육기관인데 일본의 민중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만든 것으로 이것의 존재가 이후 일본의 급속한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하네요. 사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한글이란 위대한 문자가 있었기에 지식의 대중화란 측면에서 한중일중 가장 유리했습니다. 따라서 빠른 근대화도 가능했죠. 일본의 급속한 근대화의 이유로 높은 식자율이 거론되거든요. 왜 한국이 근대화에 유리한 한글이란 문자를 가지고도 일본에 뒤쳐졌는지 제발 알려주세요 궁금해요
  • 헐..... 2016/10/03 00:56 # 삭제

    그런식이면 중국은? 어째 아편전쟁에서 영국에게 쳐 발린거요? 문맹률과 근대화하고는 무슨 관계가....? 그나마 근대화의 시작이 서구쪽인데....이무슨...
  • 망상도..참. 2016/10/03 02:23 # 삭제 답글

    밍상도 적당히! 결론만 말한다.
    외교적 결례 아니 침략을 위해 조선의 외교권을 도둑질한놈과 개력적 정치가가 동급이라 생긱하냐?
    그러면 히틀러와 루스벨트는 세계적 대공황을 극복해낸 일물로 동일하게 평가받아야하냐?
    도조히데키와 처칠은 자신의 나라를 위해 충실하게 총리직을 수행했으니 둘다 존경받아야하냐?
댓글 입력 영역